07/07/2016
▶요즘 뜨는 아이템
아름답고 머물고 싶은 공간에는 틀림없이 향기가 있다. 인테리어의 완성, 향기 레서피에 대해.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초여름의 도쿄는 그야말로 사우나를 방불케 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흐르는 땀은 이미 옷과 함께 몸에 들러붙은 지 오래. 공항에서 지하철로 그리고 도보로 20분, 근 1시간 30분 동안 긴자의 호텔을 찾아가는 내내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은 단 하나였다. ‘이 찝찝한 기분, 샤워로 다 날려버리겠어!’ 그런데 이런 다짐은 호텔에 당도해 체크인이 채 끝나기 전에 말끔히 사라지고 말았다. 블랙의 모던한 빌딩, 16층에 자리 잡은 로비로 가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나를 개운하게 만들어준 것은 시원한 냉방도, 도쿄 타워가 보이는 탁 트인 전망도 아닌 묵직하면서도 알싸하고, 심지어 부드러운 향기였을 지니! 게다가 이보다 더 놀라웠던 사실 하나, 여름철 상쾌한 기분을 만들어주는 향으로 치자면 시트러스나 플로럴 계열을 빼놓을 수 없을 텐데, 내가 느낀 향기는 흡사 머스크 향처럼 진했지만 오히려 더 시원하고 모던한 감각마저 느껴졌으니 말이다.
이렇듯 새삼 향기가 지닌 신비로운 효능()에 감탄한 후, 나는 갖고 있는 향초와 디퓨저, 룸 스프레이를 한자리에 모아봤다. ‘과연 내가 일본 호텔에서 매료되었던 향은 무엇일까’ 제법 다양하게 모아온 향기를 하나하나 맡아보고 섞어보면 그 향을 재현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른바 내가 시도한 작업은 향기 좀 즐길 줄 안다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다는 ‘향기 레이어링’이었고, 이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솔직히 향에 대해 엄청난 애정이나 내공이 있는 것도 아닌데다, 내가 갖고 있는 상식과 취향을 근간으로 모은 향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 밖에 되지 않는 터. 상큼한 시트러스(citrus), 그보다 좀 더 달콤한 프루티(fruity), 은은하고 안정감 있는 우디(woody)가 전 재산()인 상태에서 나름 묵직한 향과 라이트한 향초를 동시에 피워보기도 하고, 가든을 테마로 만들었다는 피에르 프레이(Pierre Frey, 프랑스 패브릭 전문 브랜드에서 나온 룸 스프레이)를 뿌리고 그보다 풍부한 느낌이 드는 딥티크 재스민 향초와 샌들우드 향초를 함께 피워봤지만 그때처럼 고급스럽고 세련된 호텔의 향기를 재현하기란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실패()로 돌아간 나의 향기 레이어링 도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실패’를 논할 수준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업무차 친분이 있는 인테리어 숍에 들렀을 때, 그곳에서 나는 기분 좋은 향기는 자연스레 향기 레이어링에 대한 화제를 꺼내게 했다. 알고 보니 공간 향기에 관해 전문가 수준인 인테리어 숍 오너 S의 조언은 나에게 새로운 의지를 갖게 해주었다. 일단 나의 향기 레이어링은 출발부터가 아니었다. 즉, 특정 향을 재현하겠다는 발상 자체는 향기 레이어링의 의미와 멀었다. S가 말하길, 수준급 호텔에서 사용하는 향수라면 전문 조향사를 통해 고유의 시그너처 향수, 즉 니치 향수를 만들어 쓸 테고 이러한 니치 향수는 정제된 재료들을 혼합했을 때 나오는 향기이기에 이미 여러 향료가 혼합되어 하나의 향이 완성된 향수와 향수, 향초와 향초를 섞는다고 쉽게 흉내낼 수 있는 향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니 여기서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 향기 레이어링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메인 향기에서 느껴지는 장점을 더 부각시키거나 아쉬운 점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고, 이는 각각의 향수나 향초, 디퓨저 등의 특장점을 이해한 후 자신의 취향에 맞는 향기를 연출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향기 레이어링의 경험이 많은 S의 조언을 전하자면 이렇다. 딱히 정해진 공식은 없지만, 초보자라면 프레시하고 스위트한 시트러스 계열의 라이트한 향을 공기 중에 퍼뜨리고(향초 또는 룸 스프레이) 조금 지난 후에는 앰버, 바닐라 등의 살짝 무게감 있고 따뜻하고 진한 우디 향을 더한다. 그리고 마지막, 즉 톱 노트에 해당하는 향으로 시나몬과 같은 달콤 쌉싸래한 스파이시 계열의 향을 터치해주면 공간을 한층 상쾌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연출할 수 있고, 심리적으로는 편안하고 안정적인 기분을 느낄 수 있단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향기를 레이어드해보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기본적인 원리 중 하나일 뿐. 특히 공간에 향기를 더할 때는 각 공간의 기능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하고 한편으로는 계절, 날씨, 사람의 기분이나 컨디션 등 다양한 조건을 고려해 어울리는 향을 만들어야 한다. 결국 향기 레이어링은 오랜 시간 다양한 향수와 향초를 써본 경험과 감각이 발달해야 쉽고 납득할 만한 향을 연출할 수 있다. 여기에 하나 팁을 더하자면 패션의 완성이 향수라고 했을 때, 인테리어 역시 마찬가지. 몇 해 전 파리에서 만난 진짜 파리지앵이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한국 여자들은 왜 스쿨 걸 룩에 샤넬 백을 매치하는 거지” 바꿔 말하자면 캐주얼 룩에 샤넬 향수를 뿌린들, 이른바 ‘마드모아젤’의 느낌은 아니라는 것. 향기와 인테리어 스타일 역시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원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 역시 되짚어봤다. 향초와 향수를 많이 갖고 있지만 자주, 꾸준히 사용하지는 않았던 내가 도쿄의 호텔에서 그토록 향기에 감동했던 이유란 그때를 돌이켜보니 먼저 떠오르는 건 직선형 레이아웃 안에 반듯하게 놓인 마호가니 책장과 데스크 그리고 짙은 회색 소파에 포인트로 놓인 오렌지 쿠션의 매치가 참 모던하고 산뜻한 ‘인테리어’. 정확한 향을 알 순 없었지만 헤비하고 따뜻하다는 편견이 지배적인 머스크 향이 감지되었음에도 이를 프레시하게 기억하는 것은 비주얼의 힘이 더해졌기 때문이리라.
이렇듯 향기 레이어링에 대한 깨달음이 있은 후 요즘 내게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이런 인테리어에는 어떤 향이 어울릴까, 또 이런 날씨에는 어떤 향초가 마음을 달래줄까’ 아직 향기를 섞어 쓰기 전, 연습 단계에 있는 나는 갖고 있는 향초며 디퓨저를 하나하나 꺼내 집중적으로 사용해보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의 취향을 알게 되었으니….
오랜만에 작업실을 청소한 후 내게 향기 레이어링의 베이식을 알려준 S로부터 선물 받은 향초를 켜봤다. 아무런 정보도 읽지 않은 채, 그저 향기를 음미해보니 방금 세수를 하고 나온 듯한 상쾌함과 빨래를 막 하고 난 세탁물의 비누 냄새라고 할까 이내 향초의 정체가 궁금해 찾아보니 놀랍게도 그 존재는 내가 느낀 그대로였다. ‘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상드의 작품 속 주인공인 하녀의 생활 공간을 연상시키는 향. 톱 노트는 오렌지와 라벤더, 미들 노트는 프레시 런더리, 바텀 노트는 머스크!’ 세상에 이 향초에도 머스크가 들어 있었다니! 그럼 이제 나의 인테리어 스타일의 완성은 머스크 향이란 말인가. 아니, 그런데 어딜 봐서 내 공간이 머스크 향과 맞아떨어지는 것일까.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진다. ‘공간에 맞는 이미지의 향을 새롭게 찾아야 하는 것일까, 아님 지금 공간을 머스크 향에 맞춰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아직 속단하기에 이르다. 내겐 아직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는 향기 레이어링이 있지 않은가. 머스크라는 향기의 취향을 알았으니, 이제 여기에 다른 향을 매치해가며 침실이든 거실이든 어느 곳에서든 잘 어우러지는 나만의 향기를 만들고 즐기면 그만인 것을.
공간에 따른 향기 레이어링 tip
[거실]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향기를 레이어드하는 것이 효과적. 시트러스와 비슷하지만 상대적으로 라이트한 과일 향이 나는 프루티 계열의 향초를 동시에 켜 놓으면 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분위기를 낼 수 있다. 무화과처럼 달콤한 향이 강하다 싶으면 로즈나 백합, 유칼립투스 등 생화를 함께 매치한다. 생화의 향기가 과일 향을 중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다이닝룸]
식탁에 모여 음식을 먹을 때는 플로럴 계열의 향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이때는 음식의 향을 압도하지 않을 만큼 가벼운 향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파우더리한 꽃향기를 베이스로 정했을 때는 풀 내음을 매치해 전체적으로 무겁거나 자극적인 향이 되지 않도록 한다. 여기에 진저나 계피 등 향신료 계열의 향을 더하면 식욕을 돋우는 효과도 낼 수 있다. 단, 이때 향초나 디퓨저는 다이닝룸의 바닥 모서리 등에 놓아 향이 은은하게 퍼지도록 한다.
[욕실]
잠시 사용하더라도 편안하게 머물고 싶은 욕실은 2~3가지 향으로 라이트하고 잔향이 오래 가도록 레이어드 하는 것이 좋다. 로즈와 라벤더는 향이 은은 하게 오래 유지되며 진정 효과가 뛰어나다. 또한 이 두 가지 향은 다른 향기와 잘 어우러져 이를 베이스로 좀 더 상쾌하고 쿨한 민트 혹은 재스민 등을 매치하면 산뜻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단, 욕실은 밀폐된 공간인 만큼 향초보다는 디퓨저 혹은 고형 룸 스프레이로 향기를 레이어드하는 것이 좋다.
[현관 및 복도]
산뜻하면서도 발향성이 강한 향기를 섞어 놓아 쾌적하게 연출하는 것이 관건. 베이스로 시트러스 계열과 플로럴 계열의 향초나 디퓨저에 발향이 강한 시나몬을 레이어드하면 산뜻한 시트러스 향이 좀 더 고혹적인 느낌으로 퍼져 나가고, 동시에 언뜻언뜻 상큼한 감귤류 향기가 배어 올라와 이상적인 균형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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